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즈카 오사무 (문단 편집) ===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시초 === '''오늘날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비즈니스 모델은 대부분 데즈카 오사무가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화 잡지에서 연재되는 만화가 인기를 얻어 애니메이션화되고 [[머천다이징|관련 캐릭터 상품의 판매로 수익을 얻는 구조]]는 데즈카 오사무가 시작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 대상의 하이타겟의 애니메이션을 최초로 시도한 것도 데즈카 오사무라고 볼 수 있는데 소위 아니메라마(아니메+[[드라마]])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69년에 개봉된 '[[천일야화(애니메이션)|천일야화]]'는 69년 일본 [[박스 오피스]] 5위에 들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어서 '[[클레오파트라]]'와 '[[슬픔의 벨라돈나]]'도 만들었다. ||데즈카 오사무 콘티의 [[철완 아톰]] (1980) 1화. 잘 만들었는데 편집이 이상함을 느낄 수 있다. || 애니메이션의 연출 및 [[감독]]을 직접 하기도 했는데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전혀 다른 영역이란 걸 실감하고 몇 번 하고 그만두었다. 그가 [[연출]]까지 담당했던 에피소드를 보면 명성에 비해서 참담하다. 표정과 동작은 만화처럼 매우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잘 그리고 액션도 잘 하는데 장면과 장면이 그냥 휙휙 넘어간다. 만화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상상력으로 메꾸지만 애니는 자연스럽게 넘어가기 위해선 움직임을 넣어주거나 장면 전환 이펙트를 넣는 등 궁리를 해야되는데 이걸 전혀 안 한다. [[린 타로]]는 데즈카 오사무의 이런 버릇 때문에 영화 편집에서 쓰이는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 개념을 애니메이션에 도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직원들이 이러는 걸 보면 배워서 따라할 법도 한데 그 후로도 전혀 안 한다. 이쪽으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모양. 이후로는 [[스기이 기사부로]], [[토미노 요시유키]], [[린 타로]], [[데자키 오사무]] 같은 후배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했다. 하지만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도 힘이 넘치는 연출 기법을 만들어내는 업적을 남겼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사용한 리미티드 기법의 응용을 극대화한 것이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의 1초당 컷의 [[프레임]](24~30)에서 하프 프레임(12~16)을 도입한 것. 사실 그것도 많이써야 하프 프레임이고 실제 무시 프로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은 4~8프레임 밖에 쓰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프레임 수가 적으므로 화면이 휙휙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져 디테일한 묘사는 불가능하지만 반면 속도감이나 박진감 같은 묘사는 기존 애니메이션보다 뛰어나게 된다. 아톰의 실질적인 감독이었던 [[스기이 기사부로]] 말로는 이러한 작화 매수 줄이기 연출은 데즈카 오사무가 시조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 당시 [[토에이 동화]]에서도 TV용 애니메이션을 시도할 생각은 있는데 그 제작비 때문에 주저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움직이지 않는 그래서 애니메이션도 아니라고 '테레비 망가'라고 조롱받은 그림 연극 수준의 작품을 만들었다. 다만 그림이 움직이지 않는 대신 만화 연출을 대거 도입했고 제작 중에 [[토미노 요시유키]], [[린 타로]]와 같은 연출력 있는 신인 연출가와 애니메이터를 대거 영입해서 방영 중에 품질이 높아졌다. 그래서 작화와 움직임보다는 연출을 중시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또 하나의 트랜드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본디 데즈카 오사무는 [[월트 디즈니]]의 열혈팬이라서 제대로 된 24프레임 풀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풀 애니메이션이 뭔지 개념 파악을 못했다. 그저 프레임만 많이 넣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가 명성을 얻은 뒤에 나온 애니메이션은 투자금을 많이 받아 프레임을 많이 넣었는데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다. 그가 감독한 풀애니메이션 [[불새(만화)|불새 2772 사랑의 코스모존]]은 동화만 1초에 24장을 그려넣으면 되는 줄 알고 인물이 가만히 서있는데도 부들부들 떠는 기괴한 작품을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일본 아니메의 특유의 기법은 데즈카 오사무 이후의 후배 애니메이터들이 개발한 것으로 데즈카 오사무가 아니메의 연출이나 기술 발전에 공헌한 것은 거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연출은 일본 애니메이션 발전사에 도움이 안 되고 자신이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도 돈 문제로 본의 아니게 만들었던 저예산 리미티드 기법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때문에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유일의 만화의 신이라는 칭호는 얻었지만 애니메이션의 신이라는 칭호는 받지 못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의 신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은 [[모리 야스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